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샤를 드골 (문단 편집) == 어록 == >'''제 정신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국민들과 패배하고 흩어져 달아나는 군대를 목격하고, 더욱이 우리를 경멸하고 있는 적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전해듣고, 나는 끝없는 분노가 복받쳐 오른다. 아,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대단히 잘못 시작된 전쟁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희망이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싸움이 필요한 곳을 보면 어디든 달려가 싸울 것이다. 싸움이 필요한 곳에서, 싸움이 필요한 만큼, 적이 패배할 때까지, 국가의 임무가 깨끗이 청산될 때까지 나는 싸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 날이란 파리가 함락당한 날을 의미한다고 한다. ---- >La France a perdu une bataille, mais la France n'a pas perdu la guerre. >프랑스는 [[프랑스 침공|전투에서 졌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자유 프랑스|전쟁에서 지진 않았습니다]]. >---- > - 샤를 드골 À tous les Français 1940년 8월 판의 인터뷰 중 ---- >à mon sens, la France ne peut être la France sans grandeur. >'''내 생각에,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 >1954년 전쟁 비망록 1권에서. ---- >'''나 드골 장군이오!''' - 1940년 6월 18일, BBC방송을 통해 프랑스에 전파한 호소문의 문구. 드골이 누군지 모르던 프랑스인들에게 자유 프랑스의 존재와 결사항전에 대한 주장을 통해 자신을 처음으로 부각한 연설이다. ---- >Je suis la France. >'''내가 곧 프랑스다.''' >---- > - 1940년 11월, 영국의 외무 장관 [[앤서니 이든]]에게. 일견 보기엔 [[루이 14세]]를 떠올리게 하는 병맛같은 발언이지만, 그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 [[비시 프랑스]]를 회유해보려는 시도에 대해 비난하고 프랑스의 정통성이 자신에게 있음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발언이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현재 프랑스 정치인들의 선거유세용 단골 표어 중 하나라고. 유럽연합 결성 이후에는 "내가 곧 유럽이다"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물론 유럽의 중심, 아니 [[중화사상|세계의 중심이 프랑스]]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은 이런 표어를 기꺼워한다고. ---- >[youtube(Yuv_vbxu4lI)] >Paris outragé ! Paris brisé ! Paris martyrisé ! mais Paris libéré ! >[[파리(프랑스)|파리]]는 상처입었습니다. 파리는 파괴되었습니다. 파리는 고문받았습니다. 하지만 파리는 해방되었습니다. >---- >''1944년 파리 해방 직후 연설에서.'' ---- >'''Je vous ai compris!''' >'''나는 여러분들을 이해했습니다!''' >---- > 1958년, 알제리에서의 연설. 알제리 독립을 인정한 연설이라고 한국에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드골의 초창기 지지자들이었던 알제리 거주 프랑스인들과 프랑스 극우파들을 위한 발언이다. 이들은 드골의 집권을 초창기에 매우 환영했는데 드골이 알제리를 사수할 강경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드골도 이런 발언을 하면서 이들의 뜻에 부합하나 했지만... 결국 알제리 독립의 길로 가버렸다. 드골 개인적으로는 알제리 독립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드골 정부는 알제리 독립진영과 협상을 시작할 때 세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는데, 프랑스의 자치령, 프랑스의 동등한 주, 독립이었다. 그리고는 "난 알제리인들이 독립이라는 파멸의 길로 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라는 발언을 할 정도였다. 드골의 원래 구상은 알제리를 자치령으로 만드는 것이었고 이 방안이 FLN같은 '일부 극단주의자'[* 드골은 FLN을 일부 극단 알제리 민족주의자의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근거가 없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알제리인들은 FLN의 과격성에 대한 우려보다는 프랑스 식민통치에 대한 염증이 더 컸다.]가 아닌 일반 알제리인의 지지를 얻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알제리인은 절대다수가 독립을 지지했고 결국 독립으로 나아갔다. * 이는 드골이 가졌던 인식의 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준 통찰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이기도 하다. 사실 알제리 문제에 대한 드골의 기본적인 인식 자체는 알제리 지배를 고집했던 당시 프랑스 극우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드골 역시 제국주의 시대의 끄트머리에 태어나 성장한 인물이었기에 자국의 식민지 제국주의를 당연시했고, 식민지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역량이 거세게 성장하고 있다는 현실 역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그러니까 프랑스가 알제리에 대한 지배력을 지극히 강압적, 폭력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부 극단주의자가 아닌 대부분의 선량한 알제리인들은 프랑스의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독립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와 같은 몽상적인 예측을 바탕으로 투표를 제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드골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압도적인 독립 지지로 드러났고, 이에 드골은 '드골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절대로 알제리 지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여기고 그를 지지했던 극우파의 예상과는 달리 더이상 식민지배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것. 위 연설에서 드골은 (알제리 독립에 반대하는) 알제리 거주 프랑스인과 극우파들을 '이해한다'고 발언했는데, 분명히 이해하기는 이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샤를 드골이라는 정치인의 행보에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된 것은 바로 '위대한 프랑스', 즉 열강으로써 프랑스의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욕망이었고, 당시 프랑스의 정치계와 사회 전반에서 '식민지의 유지는 식민제국 열강으로써 프랑스의 지위 유지에 필수적이며, 특히 그중에서도 알제리는 가장 중요한 식민지'라는 인식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즉 드골 개인의 성향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든 알제리의 독립에 극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당연했고, 알제리의 독립을 막으려는 현지 프랑스인 및 극우파의 입장을 단순히 '이해했다'를 넘어 상당히 공감하기까지 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것. 하지만 식민지 유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비교적 빠르게 [[손절]]하고 대신 [[프랑스의 핵개발|핵개발]] 및 [[자주국방]]을 위한 비용 투자등으로 국제적 지위를 유지한다는 새로운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현실 정치인으로써 보더라도 '이해했다'는 애매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강력한 지지자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장래의 정치적 행보를 제약할 구체적인 입장 표명 역시 피한 것이다. ---- >그 친구, 사격실력이 형편없구만. >---- > 여섯 번째 암살 시도 당시 여러 번의 총격을 가하고도 하나도 맞추지 못한 암살범을 두고 한 농담. ---- >Vive la France ! La France accède au statut de grande puissance. >위대한 프랑스 만세! 오늘 아침 이후로 프랑스는 더욱 강력하고 자랑스런 국가가 되었다. >---- >- 1960년 [[프랑스의 핵개발|프랑스의 첫 핵실험]] 직후 성공 소식을 발표하며 던진 첫마디. 이 문장을 모티브로 한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DLC#s-1.3|유로트럭 DLC가 발매되었다. 항목 참조.]] ---- >Vive Montréal ! Vive le Québec ! Vive le Québec libre ! Vive, vive, vive le Canada français ! Et vive la France ! >[[몽레알]] 만세! [[퀘벡]] 만세! 자유 퀘벡 만세! 프랑스계 캐나다 만세! 프랑스 만세! >---- >- 1967년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 국제 박람회 연설 도중에 한 말. 당시 [[퀘벡 독립운동|퀘벡 분리독립]] 문제가 한창이던 상황이라 그의 발언은 사실상의 내정간섭이였고, 대단한 물의를 일으켰다. ---- > Es lebe Bonn! Es lebe Deutschland! Es lebe die deutsch-französische Freundschaft! Es lebe ein großes Volk! >[[본(독일)|본]] 만세! 독일 만세! [[프랑스-독일 관계|독불 친선관계]] 만세! 위대한 민족 만세! >---- >- 1962년 서독 국빈 방문 중 자신들에게 환호하는 독일 청중들을 향해 행한 연설. '''유창한 독일어로''' 연설하여 청중들의 마음을 얻었다. 정작 연설 직후 드골은 측근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독일인|저 친구들]]이 정말 위대한 민족이라면 날 향해 환호하지는 않았겠지."라고 냉소했다고 전해진다. ---- >'''그럼 친구를 바꿔보세요'''. >---- >드골과 정치성향이 반대인 의원이 “각하, 제 친구들은 각하의 정책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자 ---- >'''영국은 미국의 유럽 내 영향력 확보를 위한 ‘트로이의 목마’다.''' >---- >1967년 11월 27일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신청에 대해 [[https://www.cvce.eu/collections/unit-content/-/unit/02bb76df-d066-4c08-a58a-d4686a3e68ff/e491121c-8e37-473f-afe6-ff52e349c1aa|거부권]](veto)을 행사하며 남긴 말 자유프랑스를 후원했던 영국 입장에서야 배신감을 느낀 말이지만, 드골에게 있어서 영국은 프랑스에게 못 믿을 존재였다. 역사적인 것이야 차치하고,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창설에도, 1957년 EEC 출범에도 영국은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다 영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 반면, 다른 서유럽 국가들은 번영하기 시작하자 EEC 가입을 추진한 것은 드골 입장에서 가당치 않았을 것이다. ---- >'''내버려 둬. 그도 프랑스인이야. [[볼테르]]를 [[바스티유 요새|바스티유]]에 가둘 셈인가?''' >---- >[[68운동]] 당시 [[장폴 사르트르]] 체포를 건의한 측근에게. 골수 좌파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사르트르는 평생동안 드골에 대해 살벌한 비판을 가했다. 하지만 드골은 표현의 자유와 (좌파도) 애국심에 행하는 발언이라는 이유로 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였다. 드골 옹호자들이 드골 정권의 권위주의적인 면은 인정해도 민주주의적 정치 참여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가치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며 종종 인용하는 예시이다. ---- >미국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 >어느 나라든지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다른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해주지는 못한다. [[프랑스의 핵개발|프랑스의 핵무기 개발]] 선언시에 미국, 영국이 [[핵우산]]을 보장한다는 말을 비슷하게 하자 샤를 드 골은 위와 같은 말을 하며 결국엔 미국이든 영국이든 자신의 나라를 우선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강대국의 핵우산 제공을 불신하며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는 측에서 자주 내세우는 명분으로 인용되고 있다. ---- >Je cesse d’exercer mes fonctions de président de la République. Cette décision prend effet aujourd’hui à midi. >'''저는 공화국 대통령직 정무를 중단합니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부터 유효합니다.''' >---- >1969년 대통령 사임 당시의 연설. 이게 대통령 사임 연설의 전부다.~~[[쿨리지]]는 더 간단하게 말했다.~~~~하지만 [[쿨리지]]는 사임이 아니라 출마 포기 선언이었다.~~ 이 때문에 드골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그의 사퇴만은 '쓸데없는 미사여구나 변명도 없고, 꼼수도 부리지 않고 깔끔하게 물러났다.'라고 높게 평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아파!''' - [[유언]] 정확히는 목을 가리키며 아프다고 했다. 유언이라기 보다는 급작스러운 단말마에 가까운 발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